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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火伽倻坟墓内的首饰“1500年来首次外出”비화가야의 여인‘1500년만의 외출’
작성자 : 한승제 작성일 : 2020-11-21조회수 : 94

 

伽倻古坟群(也称古墓群)中的昌宁校洞松岘洞古墓群被认为是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以来的盗墓重灾区在该古墓群的一个坟墓中首饰遗物没有被盗掘大量出土
  文化遗产厅国立伽倻文化遗产研究所(所长金智妍)28日表示对庆南昌宁郡校洞63号墓进行了挖掘调查结果确认了非火伽倻统治者的金铜冠金耳环串珠项链等除了没有发现鞋子之外这与上个月发掘出全身所有首饰的庆北庆州市皇南洞新罗古墓相似
  据推测校洞63号墓建于5世纪中期位于该古墓2米北侧的39号墓因在里面发现袋装面包橡胶脸盆白铁皮罐等因盗墓已经荒废不堪昌宁地区的非火伽倻古墓结构是如果从盖石间往里挤进去很容易偷走遗物因此非火伽倻遗物此前只确认了金铜冠碎片或装饰品但不知道其全貌
  此次发现的文物阵容非常华丽头部位置可以确认高21.5cm的金铜冠树形装饰为三层冠的圆形底端垂挂着勾玉和镀金珠冠的里面还发现了被推测为冠帽的织物痕迹
  两耳部分有一对粗的环形耳环脖子和胸前挂着三四排蓝色玻璃珠编制的串珠项链系上带有银装饰手刀的银腰带双手各有一枚(右手)3(左手)银戒指被确认右臂部分还出现了连接圆形金板的勾玉和橘黄色珠子估计是手镯或手刀的装饰品
  国立伽倻文化遗产研究所考虑到该墓的主人是身高155厘米左右的最高统治阶级而且发现了粗耳环和手刀推测为女性坟墓内外还发现了至少埋葬5名殉葬者的痕迹这些人被安置在木棺中与坟墓主人保持相同的方向因此很有可能不是低阶级
  葬结构和出土的陶器是典型的伽倻样式但装饰品与新罗时期相似也是特征之一学艺室长梁淑子解释说可以推测出位于洛东江东侧的非火伽倻与新罗的交流较多但墓葬样式变化最为保守所以从考古学角度展开的可能性较高
  文化遗产厅从2014年开始对推测为非火伽倻最高统治层的墓区中的未整理地区进行调查发现了63号墓去年11大型盖石用起重机吊起正式开始了挖掘工作
  国立伽倻文化遗产研究所将于下月5日通过油管(YouTube)举行由参与此次挖掘调查的团员们参加的实时在线挖掘调查说明会
金民 kimmin@donga.com

 

 

가야 고분군 중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굴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으로 꼽힌다. 이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장신구 유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졌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경남 창녕군 교동II63호분을 발굴해 조사한 결과 비화가야 지배자의 금동관 금귀걸이 구슬목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만 빼면 지난달 몸 전체 장신구 일체가 발굴된 경북 경주시 황남동 신라 고분과 비슷하다.

교동II63호분은 5세기 중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의 2m 북쪽에 있는 39호분은 안에서 빵봉지,고무대야,양동이가 발견되는 등 도굴로 황폐화돼 있었다. 창녕 지역 비화가야 고분은 덮개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유물을 쉽게 훔칠 수 있는 구조여서 비화가야 유물은 그동안 금동관 조각이나 장신구만 확인됐을 뿐 전모를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머리 위치에서는 높이 21.5cm 금동관이 확인된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이 3단으로 세워져 있고,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이 드리워져 있다. 관 속에는 관모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발견됐다.

양쪽 귀 부분에서는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서너 줄로 엮은 구슬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은장식 손칼이 달린 은허리띠를 둘렀으며 양손에는 각각 은반지 1(오른손),3(왼손)가 확인됐다.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도 나왔다. 팔찌나 손칼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무덤의 주인을 키 155cm가량의 최고 지배계급이고,긴 칼 대신 굵은 귀고리와 손칼이 발견된 점을 감안해 여성으로 추정했다. 무덤 안팎으로 순장자가 최소 5명 묻힌 흔적도 나타났다. 이들은 무덤 주인공과 같은 방향으로 목관에 안치돼 낮은 계급은 아닐 확률이 높다. 무덤 구조와 출토된 토기는 전형적인 가야 양식이지만 장신구는 신라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양숙자 학예실장은낙동강 동쪽에 있던 비화가야가 신라와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다만 무덤 양식이 가장 보수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가야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역 중 미정비지역을 조사하다 63호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대형 덮개돌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 5일 유튜브를 통해 이번 발굴조사에 참여한 단원들이 출연하는 실시간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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